with 캐스퍼, 1인 차박 가능? 2인 차박은?

2022. 10. 2. 01:32리뷰


욕심이 나더라.

애초에 캐스퍼를 구매할 때 차박이라든지 차크닉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캠핑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까닭이다. 그래선지 풀옵션급 인스퍼레이션 트림이었지만, 앞뒷열 풀폴딩 할 일은 가뭄에 콩 나듯 희박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잠깐잠깐 나들이 나갈 때. 조수석 폴딩 후 뒷좌석에 앉아 발 올려놓고 시간을 보내면서 ‘이 정도면 차박도 할 만하겠는데?’ 싶었다.

때마침 여름휴가철이었다. 어디 바람 좀 쐬고 올 겸, 차박도 해볼 겸 떠나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난생 첫 캐스퍼와 함께한 지난 여름휴가에 대한 후일담이다.

 


 

간단하게 챙겨서 소박하게 자고 오자.

애초 계획이었다. 사실 한여름이어서 방한용품이니 뭐니 이것저것 챙길 필요도 없이 몸만 가도 그만이었다. 뒷자석을 리클라이닝 기능으로 최대한 눕히고 대충 자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떠나려 하니, 차박 용품이 눈에 들어왔다. 정식으로 각 잡고 캠핑할 목적은 아니었지만, 이왕 가는 거 편의와 감성이 살짝 묻었으면 싶었다.

생각을 바꿨다.

소소하게 몇 가지만 더 챙겨가기로 했다. 우선 한여름 차박에서 가장 필요한 것부터 찾았다. 모기 침입을 막기 위한 가림막, 모기장이다.

이리저리 따져봤는데, 결국 현대 정품 멀티커튼으로 정했다. 십만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고가였지만, 가림막 + 모기장 2가지 용도로 쓸 수 있는 점, 정교한 만듦새에 마음이 갔다.

지금 생각해도 이때 멀티커튼을 구매한 건 잘한 일이다. 확실히 오픈몰에서 파는 일이만 원짜리 모기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을 보여줬다.

이외에도 평탄화에 쓸 매트와 간단한 조명, 침낭을 구매했다. 다 합쳐도 5만 원이 채 안 되는 값이니… 이만하면 당초 목적대로 미니멀리즘 차박 세팅을 마친 것.

취사용품이나 식재료는 구매하지 않았다. 내 목적은 오직 ‘캐스퍼에서 한번 잠이나 자고 와보자’였으니까. 거창한 캠핑 장비들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소소한 준비를 마치고, 점심과 저녁에 먹을 즉석식품을 들고 떠났다. 실미도로.

 


 

실미도 인근에 도착했을 때 길목이 막혀 섬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하지만 실미도 유원지에 차를 대고 캠핑할 수 있었다. 가격은 인당 입장료, 주차료, 캠핑료 등을 모두 합산하여 받는 듯했다. 1인 18,000원을 내고 차박을 시작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자리 경쟁은 치열했지만, 다행히 바다 전망의 좋은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비좁은 곳도 들어갈 수 있는 경차 덕을 좀 봤다.

도착 후 본격적인 차박 준비를 했다. 멀티커튼으로 창문과 앞유리를 모두 가리고, 지퍼를 개방해 모기장으로 활용했다. 역시 현대 정품이라, 캐스퍼에 딱 맞는 만듦새가 좋았다. 지퍼로 열고닫는 편의성은 두말할 것도 없다.

조수석과 조수석 뒷열은 폴딩하고 1인용 매트를 얹어 평탄화했다. (트렁크는 빈공간운 캐스퍼 살 때 미리 구입한 러기지박스로 채웠다) 그 위에 침낭을 올려 잠자리를 만들었다. 운전석은 폴딩해 테이블로 활용했다. 운전석 뒷좌석은 접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현대가 아무리 경형 SUV라 강조해도 캐스퍼는 그냥 경차다. SUV마냥 높은 차고를 생각하면 안 된다. 낮은 차고 탓에 평탄화한 곳에 누울 순 있지만 앉을 순 없었다. 차 안에 앉아서 무언가 하거나 먹기 위해선 폴딩하지 않은 좌석이 하나 필요했다. 

때문에 캐스퍼 1인 차박을 고려 중이라면 전 좌석 평탄화 매트보단 1인용 평탄화 매트를 구매하길 추천한다. 그래야 폴딩 안 한 의자에 앉아 밥도 먹고, 이런 저런 용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간단한 차박 준비를 마치고 조명까지 걸어 놓으니 제법 분위기가 났다. 이제 남은 건 밥 먹고 게임을 하고, 파도 소리나 들으면 잠자는 것뿐. (닌텐도 들고 오길 잘했다)

 


 

다음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다. 바다 옆에서 자느라 아침이 좀 쌀쌀했지만, 자연 속에서 자는 느낌이 제법 좋았다. 잠자리는 다소 불편하긴 했다. 좁디좁은 1인용 매트를 깔고 잤으니 편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터.

사실 잠들기 전까지만 불편했을 뿐 잠잘 때는 좁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였다. 잠만 잘 잤다. 어쨌든 경차에서 차박 치고는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캐스퍼 차박. 힘들었다기보다

‘어 이게 되네?’
‘간단하게 떠났다가 하루 자고 오는 정도는 충분하네?’

싶은 생각이 드는 경험이었다. 차박은 생각지도 않은 내게 의외의 장점을 발견한 선물 같은 경험이었다. 물론 본격적인 캠핑이나 2인 이상의 차박은 캐스퍼로 하는 걸 추천하진 않는다.

부피도 크고 가짓수도 많은 캠핑 장비를 싣기에 내부 공간이 넉넉지 않거니와 좁디좁은 차 안에서 둘이서 잔다는 건 꽤나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니까.

혼자. 간단하게. 가볍게. 식사는 해먹기보단 포장음식으로.
미니멀한 차림으로 자연에서 하루 자는 기분만 느끼는 것.

내가 추천하는 캐스퍼 차박의 정석이다. 이 정도의 차박이라면 큰 불편없이, 아쉬움 없이 캐스퍼로도 충분하겠다.

그런데, 지난 여름의 차박이 나름 좋았나 보다. 날 선선해지니 다시 한 번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말이다. 캠핑, 외박과 담쌓고 살던 나였는데.

가만있어 보자, 그럼 이번 개천절 연휴에 어디를 가볼까…